김주호 | 박일순 | 원인종 | 최인수 | 홍순모


공존 coexistence


2023. 5. 3 (wed) ~ 5. 31 (wed)

전시서문



공존(coexistence)


흙이나 나무, 돌, 금속 등을 빚거나 깎고 새겨서 입체적 형상을 만드는 조형 미술을 조각이라 명명한다면 수십년간 다양한 재료의 물성과 형태를 연구하며 꾸준히 작업세계를 넓혀오신 김주호, 박일순, 원인종, 최인수, 홍순모 5분의 작가님을 모시고 5월 전시를 기획하였습니다.


먼저, 김주호 작가는 테라코타, 철판, 나무 등을 이용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한국적 삶의 정서를 바탕으로 친근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해학적으로 표현합니다.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철판이라는 무거운 소재임에도, 부드럽고 가벼운 느낌으로 철판 드로잉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박일순, 최인수 작가의 나무 조각의 특징은 작업에서 작가의 개입과 작위성을 최소화하여 자연과 생명의 순환을 작품에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최인수 작가의 “벌레 먹어 죽거나, 고사하거나, 공사로 잘린 나무를 쌓아놓고 여러 날 나무에 경청(傾聽)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가 나를 관찰하는 듯하다.”라는 고백이나, 박일순 작가의 “베니어판을 마주하고 나무를 상상한다. 거대한 숲에 나무로 살았을 그의 근본에 대하여. 생명의 기운 충천하던 그의 시간과 숨결의 흔적 애무하며 위로의 예를 다하여 그의 꿈을 되살린다.”라는 표현처럼 두 작가는 물질(나무)과 내밀하게 교감하면서 나무에 숨어있는 우주를 조심스럽게 드러내 보이는 여정 속으로 저희를 안내합니다.


홍순모 작가는 재료인 수성암이나 무안점토를 이용해 인체를 엉성한 듯 간결하게 묘사합니다. 때로는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우리네 아버지같은 모습으로 현실 세계에서 아파하고 고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늘날을 사는 한국인의 얼굴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투박함 속에 가만히 내려앉는 슬픔이 우리를 어루만지는 듯합니다.


원인종 작가는 고향인 강원도에서 보고 자란 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깊게 체험하여 자연또한 숨쉬고, 상처 입었을 때 아파하는 유기체라는 인식을 작품에 담고 있습니다. 철을 재료로 한 작품은 자연의 순환 과정 속 자연과의 소통과 교감, 조화를 지향하며, 작품은 고요하고도 역동적인 힘이 함께 느껴집니다.


이렇게 김주호, 박일순, 원인종, 최인수, 홍순모 작가님의 조각은 특징이나 성격들이 모두 다르며 각각의 개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조각의 대상인 나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주변의 인물들과 섬세한 공명과 소통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이분법적 관점에서 벗어나 세상 만물이 나와 다름없는 생명체라는 인식의 지평이 넓어져서 모두 함께 오래도록 공존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갤러리가비


최인수_장소가 되다-15 (Becoming a Place-15), zelkova, 118.3x8x9cm, 2023
최인수_장소가 되다-15 (Becoming a Place-15), zelkova, 118.3x8x9cm, 2023

최인수


 나무의 나이테에는 나무가 살아온 연륜이 비균질적으로 새겨져 있다. 작업은 바로 그 흔적을 살피며 나무 내부의 결을 따라 일정 부분 깎아낸 것일 뿐 어떤 의미를 위해 인위적으로 형태를 부여한 것이 아니다. 작업 과정에서의 노고와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작업의 실상이지만 오히려 정신은 맑아지고 이윽고 나는 나무를 깍지만 조각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몸을 써서 일하기에 작업으로부터 나는 소외되지 않는다.

홍순모_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수성암, 30×25×38cm, 2012
홍순모_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수성암, 30×25×38cm, 2012

홍순모


나는 형태로 이야기한다.

이 형태는 사실적 직설적인 형상이 아니다.

오랫동안 마음에서 생각하고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추스른 조형 언어들이다.


나는 체험을 통해 기억하는 진실을 소중히 여긴다.

외양을 투시하고 해부하며 내면세계를 끊임없이 파고 들어간다.


그러면 이러한 내밀하고 절제된 조형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이것을 자연에서 들여다본다.

형태는 삶의 모습이다.

형태는 삶의 한 단면이다.


원인종_산-수, 철, 캔버스천, 110x65x17cm, 2017
원인종_산-수, 철, 캔버스천, 110x65x17cm, 2017

원인종


 전반적인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명과의 관계에 대한 사유는 본인이 실재적으로 살거나 경험한 자연의 모습 속에서 영감을 가져 왔으며 작업의 주제가 된다. 

 자연의 원초적인 시간과 함께 그 속에서 살아온 인간의 삶과 문명의 시간, 그리고 거대한 흐름 속에서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과정, 그것을 바라보는 현재의 나의 시선과 영원으로 이어지는 미래에 대한 예감까지 포함하는 수많은 시간의 층을 작품 속에 담아 왔다.

박일순_Green, wood, polyester, 24.7x30x5.2cm, 2022
박일순_Green, wood, polyester, 24.7x30x5.2cm, 2022

박일순


내게 온 나무는


생의 순환섭리에 대한

오래된 물음에


살아있던 시절의 열망을

주검의 살결에

드리운다.

김주호_철조요염보살사유입상, 철판, 72x45x17cm, 2009
김주호_철조요염보살사유입상, 철판, 72x45x17cm, 2009

김주호


 입체를 다룸에 있어 재료의 특성에 맞는 형태 연구는 창작의 새로운 즐거움이다. 재료와 형태가 맞아 떨어 질 때의 기막힌 희열은 힘든 작업과정을 잊게 해준다. 돌의 육중한 무게감은 침묵의 형상을 이끌어낸다. 흙의 질구이는 따스한 체온의 인간미를 만나게 된다. 

 철판의 공간에 대한 과감함은 돌이나 흙, 나무가 갖지 못한 재료의 특성이다. 그래서인가 형태의 단위체로 제한되었던 형상이 철판으로 인하여 신나게 뻗어나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