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임철희 개인전
Lim, Cheol Hee's solo exhibition
Stranger
2015. 6. 13.[Sat] - 2015. 7. 3.[Fri]

Stranger 79/ 130.3x97cm/ Oil on canvas/ 2014 Stranger 69/ 72.8x60.6cm/ Oil on canvas/ 2014 Stranger 72/ 72.8x60.6cm/ Oil on canvas/ 2014 Stranger 44/ 53x45.5cm/ Oil on canvas/ 2013 Stranger 98/ 116.7x91cm/ Oil on canvas/ 2015
Stranger 79/ 130.3x97cm/ Oil on canvas/ 2014
Stranger 79
130.3x97cm
Oil on canvas
2014
작가평론

이방인의 응시(凝視), 탈출(Exodus) 그리고 자기 잉태


작가들이 작업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다양하다. 임철희는 인물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끌어온 화가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마음으로, 마음에서 손으로 오는 길이라고 한다. 실천의 어려움을 뜻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애써 일궈 놓은 것을 단박에 부수기란 쉽지 않다. 풀수록 솟는 샘물처럼 다시 고인다는 장담을 할 수 없기 때문일까. 버림의 결행이 쉽지 않다. 한편 그림을 술래잡기나 시(時)에 비유한 것은 완벽한 기술적 구사만이 회화의 몫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이것은 현대회화가 지닌 난제이자 매력일 것이다. 임철희 작가도 이러한 고민에 게으르지 않다. 줄곧 인물화에 집중해온 그의 고민이 <이방인>으로 드러난다.

미술사에서 인물화는 중요한 위치로 자리매김 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물화가 출몰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작가들이 인체라는 노스탤지어에 얼마나 크게 천착(穿鑿)하는지를 알 수 있다. 임철희 작가는 인물화 중에서 특히 얼굴에 집중한다. 표정 짓기가 용이한 얼굴이 그에게는 예술적 영감의 스펙트럼을 제공하는 원천지나 다름없다. 다소 관조적(觀照的)이던 뒷모습에서 앞모습으로 옮겨온 것은 2013년부터다. 응시(凝視)로 전향된 최근작에는 실존적인 자아와 이상적인 자아가 오버랩 된다. 처연한 표정과 모호하면서도 쏘는 듯한 강한 인상이 다가 아니다.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생략된 암묵적인 표정도 더러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생략된 이목구비에서도 표정이 읽혀진다. 3년간 지속해온 이러한 근작은 ‘해체’가 모토이다. 흥미로운 것은 해체의 대상이 사람이라는 점이다. 사람의 강한 침묵에서 무언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미술사는 웃는 얼굴보다 우울하거나 무표정하고 근엄한 표정을 더 많이 기록했다. 웃음은 영원하지도 않거니와 경박하다고 치부했기 때문이다. 임철희의 그림에서 넘쳐나는 것도 웃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편 표정들이다. 울분에 찬 기억도 없이 도담도담 살아온 그가 토해낸 왜곡되고 틀어진 표정의 단서가 궁금하다. 내의식일까. 생략한 한쪽 눈에 비해 정밀하게 묘사된 다른 한쪽 눈에 관심이 쏠린다. 세밀하게 묘사한 눈은 작품전체를 압도하는 화룡정점의 경지이다. 화면전체를 통틀어 유일하게 묘사를 허용한 곳이 눈인 것을 보면 분명 남다른 이유가 있을 터. 이러한 그의 화면은 인체→얼굴표정→눈빛→전체적인 분위기라는 모종의 구도를 취한다.

영화 <마더>에서 어머니(김혜자)는 스크린이 꽉 차도록 관객을 주시한다. 마네의 <올랭피아>도 관람자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해서 관객은 그들의 눈빛이 부담스럽다. 가리고픈 면면들을 들킨 것처럼 마음이 불편해진다. 아마 감독과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임철희의 회화도 <마더>나 <올랭피아>처럼 시선이 전향적(前向的)이다. 그러나 임철희의 응시는 <마더>나 <올랭피아>가 보내는 시선처럼 눈길의 방향이 화면의 바깥쪽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응시의 방향이 아니라 응시하는 행위와 대상이다. 작가는 그 방향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리며 작가의 또 다른 자아로의 응시라고 설명한다.

그의 응시에서 침묵의 절규가 포착된다. 어쩌면 작가의 내면에 억압되었던 감정에 대한 간청이나 토로가 아닐지. 우리는 종종 내면에 가려졌던 또 다른 자아와 만나곤 한다. 화가에게 이러한 행위와 발견은 작업의 자양분이 된다. 임철희는 <이방인>이라 이름 한 또 다른 자아에게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고 나와 너를 하나로 묶는다. 하여 응시하고 있는 대상도 자화상(自畵像)이자 자아상(自我像)이 된다. 다양한 모델들을 차용하지만 작가가 고안해낸 <이방인>도 자아상이자 자화상이다. 그 자화(아)상이 또 다른 자화(아)상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화가 앙리 팡탱 라투르(Henri Fantin Latour, 1836~1904)는 자화상의 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모델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며 모든 이점을 제공한다. 정확하고 화가의 말을 잘 따르며 그리기 전부터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라고. 이러한 이유에서 화가들은 자신을 모델로 삼아 표정을 실험하거나 기량수련의 수단으로 삼았다. 18세기의 자화상이 자기 과시의 수단이었다면 임철희 자화상은 내면적 통찰과 관계한다. 때문인지 매체의 혼성을 통한 임철희의 과감한 도전은 인체표현의 정해진 속성들을 해체시킨다. 황금비율(黃金比率), 콘드라포스토(contrapposto)등의 레토릭(rhetoric)이 그에게는 클리셰(Cliche)가 되고 만다. 대신 작가는 순간적으로 분출하는 영감과 직관에 응시의 시선을 과단성 있게 결합한다.

이렇게 해체시킨 임철희의 최근작은 거칠고 대범하다. 큰 스케일의 붓질이 다듬기를 굴복시킨다. 하여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그의 인물화는 이상화된 동시에 실제적이며 직설적이다. 거기에는 왜곡과 과장, 해체가 전제되었다. 작가는 이 지점에서 독일 표현주의를 거론한다. 그의 작업관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스 미술로 회귀한 고전주의 화가들은 카논(Canon)을 준수했다. 임철희의 이전 작업이 고전주의식 표현법에 근접해 있음을 상기한다면 현재(2015년)의 해체작업은 혁명적이라 할만하다. 절제된 색감에 얼버무린 듯한 붓질에도 유지되는 단단한 양괴감(量塊感)은 임철희의 회화를 고루함으로부터 탈피시킨다. 뎃생력이 바탕이 된 인물은 생동하는 조각 같다. 그것이 시각을 넘어 촉각적으로 다가온다. 일련의 노력들이 임철희의 화화를 신선함으로 격상시킨다.

요컨대 임철희의 <이방인>은 해체와 탈출(Exodus) 그리고 잉태를 도모하는 현재진형이다. 자아의 다른 이름인 <이방인>이 그 출발점인 셈이다. 이 시작이 작가에게는 들뜸과 불안 나아가서는 기대이다. 시작은 늘 미비하고 들뜨며 불안하기 마련이다. 아직 젊기에 할 만한 과감한 실험들은 또 다른 예술의 길 모색에 디딤돌이 될 것이다. 작가의 자기 부정은 결코 자기 파멸이 아닌 새로운 자기로의 잉태이므로. 예술적 층차에 각도를 달리하는 임철희의 현재적 엑소더스(Exodus)가 의미 있는 자기잉태로 거듭나길 바라며.

2015년 5월
미술학 박사 서 영 옥



작가프로필

2011 계명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2014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전공 졸업

2015 Retrace With Drawing 그룹전, 갤러리 엘르

2014 갤러리가비 신진작가 공모 수상
갤러리토픽 단체전
갤러리M 단체전
Space Womb 현대미술갤러리 단체전 (뉴욕)

2013 Space Womb 현대미술갤러리 단체전 (뉴욕)
Wall Jam Industries 단체전 (노팅햄, 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