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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개인전
한_ 소리:
紙지筆필墨묵硏연 & 水수
2016. 9. 21 [수] - 9. 30 [금]

김현지/ 한_소리_04/ 한지위에 수묵/ 46 x 70cm/ 2016 김현지/ 한_소리 03/ 한지위에 수묵/ 70 x 68cm/ 한지위에 수묵/ 2016 김현지/ 한_소리 11/ 한지위에 수묵/ 35 x 35 cm/ 2016 김현지/ 한_소리_07/ 한지위에 수묵/ 70 x 34 cm/ 2016 김현지/ 木生火_01/ 한지위에 수묵/ 143 x 45 cm/ 2016
김현지/ 한_소리_04/ 한지위에 수묵/ 46 x 70cm/ 2016
김현지
한_소리_04
한지위에 수묵
46 x 70cm
2016
작가노트

紙지:
“나의 역할은 수용이다. 나는 큰 숨구멍을 통해, 끊임없이 외부로부터의 물질을 받아 들인다. 처음 들어온 것이 자리를 차지하면, 다음 것은 그 자리를 비켜서 다시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순서대로 안으로 안으로 자리를 만들어 주며, 끝없이 받아 들인다. 물은 나의 가장 완벽한 동업자이다. 원래 뻣뻣한 나무 출신인 나를 한없이 부드럽고 수용적인 성품이 되도록 한 것이, 바로 물이다.
나에게 기름과 친해 보라고 하면 단연코 사절이다. 나의 한 고집은 출생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껍질이 벗겨진 채, 수백 번 두들김과 불림이라는 당금질을 당한 후 만들어진 닥풀이 곱게 채에 받쳐져서 탄생한 것이다.
나의 수명을 단축시킬 접착제를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나의 큰 모공 즉, 숨구멍을 천연 상태로 유지할 수 있었고, 나의 길고 성긴 섬유질 조직은 능히 1000년의 모진 세월도 견딜 수 있는, 강한 물성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흠뻑 물에 젖고도, 팽팽하게 당겨 놓은 대로 제 모습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는, 유연성까지 갖춘 것이 바로 나다. 투명함으로 가득 찬 나의 하얀 빈 공간은, 그 자체가 숨을 쉬는 여백으로 당당히 그 존재 가치를 보장 받는다.
모든 것을 한없이 수용하되 아무것도 없는 그 자체로도 빛날 수 있는 자.. 그것이 바로 나다.”


筆필:
“나는 모든 힘의 운용자이며, 전달자이다. 특히 나는 이 지상 최고의 지혜를 가진 물을, 최대한 오래 그리고 많이 공중에 매달아 둘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첨단 바이오 구조물이다. 나는 창조자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 최적화된 부드러움과 힘을 가지고 있고, 물은 나에게 이런 힘을 부여해 주는 멋진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나의 한 올 한 올 털 끝마다에 뻗쳐 있는, 온갖 개성들은 때로는 통제 불능의 거칠음과 반항성을 드러내지만, 다시금 매무새를 가다듬는 단정한 군인처럼, 힘차고도 일사 분란하게 종이 위를 내 달린다.
마치 한편의 교향곡에 맞춰 춤을 추듯, 느리다가 빨라지다 멈췄다가 쓸어가다, 다시 회전하고 폴짝 뛰고, 종종 걸음을 치다, 후두둑 몸을 떨며 날아 간다.
누구는 이런 나의 몸짓을 기운생동이라 극찬한다지만, 사실 나는 창조자의 기분에 따라 그저 열심히 움직여 주는 도구의 역할을 했을 뿐, 이 모든 창조의 공로는 나의 파트너 물水에게 돌리고 싶다. 그야 말로 내가 아는 가장 섹시하고, 변화 무쌍한 종이 위의 지배자이니까.”

墨묵:
“누가 나를 단색 검둥이라 하는가. 뜨거운 불 맛을 견디고 까맣게 속 탄 내가 이 세상의 모든 분별을 마음 속에 머금고 있는 진정 찬란한 자라는 것을 모르는가.
벼루에 담긴 물에 온 몸을 갈고 갈아, 내 모든 영혼을 아낌없이 정화한 후, 낮과 밤을 초월하고 빛과 그림자를 넘어선 아득한 가물 현玄의 경지를 추구하는 자가 바로 나다.
그래서 내 앞에선 노란 국화도, 하얀 매화꽃도, 짙푸른 댓잎도, 연두색 난초꽃도, 그 가식을 걷어내고 본질의 묵색으로 갈아 입는다.
절대적인 비움의 꽉 찬 색을 상징하는, 하얀 빛깔 종이가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친구다.
그 희고 빛나는 친구는, 나를 끝없이 품고서 밀어 내는 법이 없으니, 나는 그와의 소박한 공간에서 내가 낼 수 있는 맑고 깊은 모든 노래를 원 없이 부르리라.”

硏연:
“무겁고 투박한 나는 차가운 명상가이다.
맑은 물 오목한 그릇에 고이 담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채, 그윽한 묵향을 맡으며 천천히 묵을 갈아 낸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늘 이렇게, 모든 창조의 첫 마음을 준비해 왔다.
나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묵은 가장 맑고 빛나는 자기의 색을 드러내지 못할 것이며, 물 역시 온전히 묵과 하나 되어 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붓 또한 먹물을 받아 들임에 최고의 순간을 맛보지 못할 것이며, 종이 또한 그 흰색 살결을 따라 흘러 퍼지는, 오묘한 묵 색의 향연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냉정한 물과 먹이 따뜻하게 어우러지는 순간에, 사납게 요동쳤던 붓의 거친 숨결이, 매끄러운 나의 몸 위에서 차분하게 가라앉는 순간을.. 나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내 비록 차가운 바위 속에서 태어났으나, 머나먼 그 옛날 나의 고향은 붉은 열정으로 가득했던, 뜨거운 불 속의 용암 세계였음을 그들이 알 것인가“


水수:
모든 창조 활동은 사실상 내가 조종한다.
붓이 붓다울 수 있는 것이, 종이가 종이다울 수 있는 것이, 묵이 묵다울 수 있는 것이, 벼루가 맡은 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모두 다 내가 있어서 이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일이 끝나면, 그야말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려야만 한다. 나는 구차하게 미련을 두거나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이 지상에서 제일 쿨한.. 없는 듯 있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