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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장소
황정희 개인전 Hwang Jeong Hee solo exhibition
2012. 9.13 (목) - 2012. 9. 25(화)

작가노트

홍대 앞 커피 스미스  

이 장소, 아직 진행 중이다.
이 장소와의 관계가 끝나는 지점은 어디까지 일까.
감촉과 표면, 빛과 형상, 공간과 그 분절이 가져오는 마찰의 사건들.
장소에 대한 기억에 의존하여 그 기억이 특별히 기억이 남아 그것을 재현하는 진부한 과정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또한 그러한 의도가 작업의 시작은 더더욱 아니다.

천장까지 닿는 검은 프레임의 높은 창문과 투명 유리를 통과하는 빛에 의해 부숴지는 사물들이 시선으로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을까. 사물이 시선에 머무르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커다란 차이를 나 자신이 과연 알아차릴 수 있으며, 그 보이지 않는 섬세한 해부의 집도를 진행할 수 있을까.
거리낌 없이 검은 프레임의 직선을 만들어 간다. 콘테로 색감을 내고 문지르고, 표면을 입히면서 하얀 여백의 공간으로 명쾌함을 향해 진입한다. 이 과정에서는 문제될 것이 별로 없다. 종이의 표면과 콘테의 부딪힘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검은 색면은 1800년대의 사진처럼 회화같은 사진의 느낌조차 불어넣는다. 시간의 충돌조차 즐기려 한다. 현재를 진행하면서 100여년 전의 초기 모던을 재현하면서 느끼는 시간의 마찰, 그리고 표면과 콘테가루의 움직임.
그런데, 화면의 하단은 진행이 매우 더디다.
바닥, 그림자, 빛, 그리고 의자와 테이블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가 다시 강한 브러쉬 스트롴으로 지워지고, 다시 짙은 그림자가 지나가는 반복이 몇 일째 계속된다.
왜 이 화면의 하단은 나와 오랜 시간 동안 관계를 지속하고 있을까.
확실하게 만들어진 흑백의 명쾌한 프레임과는 달리 지워지고 그려지는 반복의 사건은 마치 이곳을 수십 번 반복하여 방문하고 있는 오래된 손님같은 느낌을 갖게끔 한다.
특히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깊이를 마주할 때 마다 왜 다시 시작하게 될까.
이 더딘 사건이 부여하는 의미는 완성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들고,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공간에 부여하면서 역동적인 회화의 사건을 지속케 한다.
그리고,
표면에서 그려지는 사건이 계속 진행되면서 만들어지고 지워지는 이미지는 이 자체로 이미 특정한 장소가 되어 버린다. 회화의 사건이 얼마만큼의 큰 폭으로 진행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그 진폭의 주기에 따라 특정한 장소로서의 의미가 생기기도하고 반대로 없어지기도 한다.
표면의 행위자=작업자인 나 자신, 그리는 행위, 장소의 이미지가 벌이는 복합적인 사건들은 회화의 과정이며, 이 과정이 만들어내는 수없이 많은 사건들을 마주치고, 해결하고 또는 그냥 받아들이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는 삶을 축소한 듯 느껴진다.
사물을 드러내고 감추는 물질간의 마찰과 미세한 움직임을 마주한 후, 어느 특정한 때에 이 장소는 비로소 사건의 진행을 멈추고, 잠시 방문객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이 아마도, 내가 이 장소를 왜 표면으로 옮기는 행위를 시작하게 하였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려주는 때가 될 것이다. 물론, 보이거나 들리는 인간의 언어가 아닌 또 다른 언어로. 그 때, 나는 이 표면 위의 장소를 다시 낯선 장소로 마주할 지도 모르며,
그 순간, 회화작업의 진귀한 순간을 마주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2012. 황 정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