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마음의 현실
Reality & Mind
여명희 개인전 Yoh Myeunghee solo exhibition
2013. 3. 8 (금) - 2013. 3. 24 (일)

작가노트

마음의 현실을 그리다

임성훈(미학, 미술비평)

그림을 보다보면 “도대체 이 작가가 무슨 의도로 이런 이미지를 캔버스에 그렸을까?”하고 궁금해 할 때가 많다. 물론 꼭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작품을 감상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때론 그 의도가 무엇인지 한 번 떠올려보면서 작품을 바라보는 것도 감상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 여명희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를 왜 그렸는지 묻고 싶어졌다. 작가는 그저 마음의 현실을 그렸을 따름이라고 간단히 말할 뿐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는 않았다. 마음의 현실과 캔버스 그려진 이미지들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몫으로 남은 것 같다. 그림의 이미지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심장이고, 그 다음으로는 종이다. 심장과 종의 관계성을 유추하기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심장과 종은 매우 이질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달리 생각해보면 연상되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심장의 운동 이미지와 종의 음향 이미지가 묘하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서 어떤 울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도 이런 까닭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전시되는 전체 작품을 두고 본다면 확연하게도 심장과 종 이미지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index)이다.

우선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미지인 심장을 보자. 심장은 사실 위험한 이미지일 수 있다. 심장 그 자체가 갖는 주제성이 강한 편이고, 또한 일반적인 선입견이 작품에 앞서 떠오르기 쉽기 때문이다. 예컨대 심장이라고 하면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살아간다’ 또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중요하다’는 식의 상투적인 말을 할 때 흔히 연상되는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그런데 여명희의 심장은 이런 식으로 이해되는 심장의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작품에 나타난 심장은 가슴이 될 수도 그리고 머리도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심장은 감성이나 이성을 대변하는 이미지가 아닌 것이다. 작가의 심장은 단지 마음의 현실을 드러내는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의 심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징그럽거나 흉측한 붉은 심장이라기보다는 의외로 귀엽기도 하고 심지어 아름답게도 느껴진다. 심장 이외에도 작품에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종, 염소, 전등, 고기 등과 같은 이미지들은 그리 특별한 것들이 아니다. 심장과 마찬가지로 작품에 나타난 이 이미지들은 또한 마음의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이다. 심장과 더불어 특히 종은 몽환적인 울림을 화면 전체에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화면에 얼핏 스쳐가듯 엿보이는 염소, 고기 등의 이미지들은 마음의 현실의 수수께끼와도 같은 부분을 은연중에 제시하고 있다. 또한 통로나 길의 이미지 그리고 미묘한 깊고 푸른 색감으로 재현된 하늘과 바다는 이러한 알레고리를 더욱 강화시켜준다.

이러한 마음의 현실을 담은 알레고리에 천착하고 있는 탓일까? 화면을 구성하고 색을 다루는 솜씨만 보더라도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라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데도 여명희는 의외로 그것을 내세우지 않는다. 작가의 관심은 완결된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현실, 그 변용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거듭하여 되풀이된 덧칠이 이를 증명한다. 하나의 그림 속에는 수없이 많은 그림이 숨겨져 있는데, 이는 마음의 층위이며, 현실의 층위들이라 할 수 있다. 다듬어낸 깔끔한 이미지를 제시하려는 의도는 아예 배제되어 있다. 흘러내리는 물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이미지의 생명성, 그 느낌을 살려내기 위해서이다. 이런 점에서 여명희는 과정을 중시하는 작가이다. 실상 마음의 현실은 그려질 수도, 말해질 수도 없다. 그렇지만 작가는 어쩔 수 없이 그려야한다. 그릴 수 없지만 그려야 하는 모순, 이 모순은 예술의 힘이기도 하다. 여명희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모순이 빚어내는 역설적인 힘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한편으론 상실과 절망의 우울한 분위기 감도는 듯한 이미지, 또 다른 한편으론 회복과 희망이 퍼지는 듯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이 마음의 현실을 그리는 과정으로 화면에 침잠해 있다.

여명희의 그림에서 시류에 편승해서 어떤 경향을 쫓아간 흔적이나 유행하는 그림꼴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작가는 재현의 감각적 기교나 선정적인 측면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힘겨운 현실을 버티면서 살아가면서 생겨나는 수많은 삶의 조각들, 그리고 그것을 일상에서 만나는 마음을 그리는데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현실, 그 조각들이 캔버스의 이곳저곳에서 상충되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면서 빛나고 있다. 얼핏 어긋나 보이는 이미지들이 화면 속에서 역설적으로 교차된다. 부정과 긍정, 상실과 희망, 행복과 불행, 절망과 구원이 교차되는 이미지들이 알레고리의 미학으로 그리고 과정의 미학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작가가 이번 연작에서 단지 이미지만을 보여주는데 그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디에 있어야 할 지 그 향방을 알지 못하는 마음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의 틈 속에 끼이면서 내는 듯한 소리, 그런 소리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쩌면 작가의 작품을 보았다기보다는 들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여명희 작가의 작품들에서 들었던 그 이미지의 소리에 이끌려 이 글을 쓰고 있기에 말이다.